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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신의 기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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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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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도 '절대반지'도… 英 시골 방앗간과 작은 펍에서 태어났다

[문화 혁신의 기원을 가다]

[크리에이티즈 로드] [1] '반지의 제왕' 발상지英 옥스퍼드·버밍엄

옥스퍼드 유명 펍 '이글…'서 '나니아 연대기' 작가 루이스 도움 받으며 책 '호빗' 완성

톨킨이 자란 버밍엄 교외 풍경, 호빗 마을 '샤이어'로 그려내… '두개의 탑' 모델도 버밍엄에

1930년 무렵 여름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J R R 톨킨(1892~19 73)은 노스무어 20번지 붉은 벽돌집 서재에 앉아 있었다. 부업으로 고교 수료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던 톨킨이 캡스턴 잎담배를 파이프에 다져 넣고 불을 붙였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불어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갑자기 짧은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땅속 구멍에 호빗이 살고 있었다." 옮겨 적으며 그는 생각했다. '도대체 호빗이 뭐지?'

1937년 9월 17일 '호빗' 초판이 출간됐다. 호빗, 마법사, 드워프, 용들의 모험 이야기가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954년엔 '반지의 제왕'이 나왔다. 신과 악마, 엘프와 인간이 뒤얽힌 '중간계(Middle Earth)' 수만년의 역사가 태어났다.

영국 언론들은 호빗이 약 1억부, 반지의 제왕이 약 1억5000만부 팔린 것으로 추정한다.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열등한 소설로 홀대받던 환상문학은 주류가 됐다. 전 세계 매출 18억달러(약 2조원)가 넘는 영화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지금 대중문화는 마법사, 요정, 괴수들로 넘쳐난다. TV 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가 조지 R 마틴은 "톨킨은 모든 판타지의 아버지"라고 단언한다. 톨킨발(發) 대중문화의 퀀텀 점프(대약진)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옥스퍼드 북쪽 울버코트 공동묘지, 톨킨과 아내 이디스가 함께 묻힌 무덤 위엔 장미나무가 자라고, 그 가지엔 순례객들이 걸어놓고 간 절대 반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묘비의 아내 이름 밑 ‘루시엔’과 톨킨 이름 밑의 ‘베렌’은 그의 책 실마릴리온 속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엘프와 인간의 이름이다. /옥스퍼드=이태훈 기자

호빗 마을의 '원형' 버밍엄 교외

버밍엄 교외 주택가, 콜(Cole)강 물길이 쉬어 가는 연못이 거울이라도 된 듯 250년 된 셰어홀 방앗간의 그림자가 비쳤다. "어린 톨킨과 동생은 방앗간에서 놀다가 흰 밀가루를 뒤집어쓴 방앗간집 아들에게 혼쭐이 나곤 했다네요. 그의 별명이 '흰 오크'였대요." 셰어홀 방앗간 박물관 아이린 드부 큐레이터 부장은 "그래서 톨킨 판타지 속 악의 세력 오크들의 피부가 흰색인 것"이라고 했다. 방앗간에서 15분쯤 거리의 모즐리 습지는 어린 톨킨의 놀이터였다. 오크 군대를 향해 바위를 던지던 중간계 고대 종족 '엔트'를 닮은 고목(古木)들이 빽빽이 서 있고, 냇물가에 블루벨 꽃 무더기가 희고 푸르게 빛났다. 톨킨 전문가 로버트 블랙햄(67)은 "중간계 풍경의 모델은 브리튼 섬 중부 지방인 미들랜드의 자연이며, 톨킨의 이상향인 호빗 마을 샤이어는 그가 뛰놀며 자란 버밍엄 교외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햄은 버밍엄에 오는 톨킨 순례객들의 지침서 격인 '톨킨 중간계의 뿌리(Roots of Tolkien's Middle Earth)'의 저자다. 버밍엄 중심가에는 중간계 '두 개의 탑'의 모델이 된 탑 '페러츠 폴리'와 '에지배스턴 워터웍스 타워'가 아직 서 있다. 110m 높이의 버밍엄대 시계탑 '올드 조'는 캄캄한 밤에도 빛나는 지름 5.25m짜리 동그란 시계를 이고 있다. 블랙햄은 "저녁마다 '올드 조'를 보며 자란 톨킨은 훗날 바랏두르 탑 위에서 붉게 타오르는 사우론의 거대한 눈에 대해 쓸 때 이 시계탑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호빗 마을 샤이어에서 호빗 빌보를 만나는 마법사 간달프. 샤이어는 그가 어릴 적 자란 버밍엄 교외를 쏙 빼닮았다. 위 사진은 ‘판타지의 아버지’ 톨킨. /워너브러더스 제공

'판타지의 아버지'가 태어난 펍

톨킨은 33세 때부터 평생 옥스퍼드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 대학 출신 영국 총리 26명 중 13명이 졸업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북쪽으로 5분 거리에 펍 '이글 앤 차일드'가 있다. 1930~1940년대 톨킨은 이 펍에서 평생 친구 C S 루이스(1898~1963) 등 친구들과 낭독 모임 '잉클링스'를 매주 가졌다. 이 작은 펍은 '모든 판타지의 아버지'가 태어난 분만실이요, 세계 톨킨 팬의 성지(聖地)다.

‘반지의 제왕’ 속, 악의 세력의 근거지 모르도르의 바랏두르 탑(왼쪽)과 그 모티브가 된 버밍엄대 시계탑 ‘올드 조’. /데일리메일·이태훈 기자

아르헨티나 여대생 이사벨라 판시타(24)도 혼자 이 펍을 찾아 옥스퍼드에 온 순례객이었다. 영문학도인 그녀는 "12세 때 처음 영어로 읽은 책이 '호빗'이었다"고 했다. "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지금도 그의 책은 제 상상력의 원천이고, 그는 제 인생의 영웅이에요." 옥스퍼드 북쪽 울버코트 공동묘지에는 톨킨과 그의 부인이 함께 묻혀 있다. 무덤엔 세계의 팬들이 각자의 언어로 써놓고 간 편지가 놓여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순례객들이 무덤 위 장미나무 가지에 묶어 둔 절대 반지들이 함께 흔들렸다. 캐나다에서 온 저스틴은 이렇게 썼다. "톨킨, 모든 게 다 고마워요."

옥스퍼드의 펍 ‘이글 앤 차일드’(왼쪽)와 버밍엄 교외의 ‘셰어홀 방앗간’. /이태훈 기자

창조는 또 다른 창조를 낳고

1969년 설립된 '톨킨 협회'는 올해 봄 총회를 남부 소도시 아런델의 호텔에서 열었다. 남녀노소 300여명이 모인 이 행사는 대가족 명절 잔치처럼 시끌벅적했다. 협회 아카이브 담당관인 팻 레이놀즈 박사는 "톨킨의 판타지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지게 하는 소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영화감독인 피터 잭슨이 톨킨의 책을 영화로 만든 것처럼, 톨킨을 읽은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을 쓰고, 중간계에 관한 노래를 만들죠. 전시 큐레이터인 저는 등장인물들의 옷을 만들어요. 사람들이 또 다른 창조에 나서게 하는 힘, 그것이 톨킨을 '모든 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게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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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톨킨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문화 혁신의 기원을 가다] [크리에이티즈 로드] [1] 톨킨 전문가 로즈버리 교수

"대중문화 속 판타지는 톨킨 이전과 톨킨 이후로 나뉜다."

손꼽히는 톨킨 전문가 중 한 명인 영국 센트럴 랭커셔대 브라이언 로즈버리(63·사진) 교수는 "톨킨은 유사 이래 신화, 종교, 전설 등 여러 형태로 인류를 사로잡았던 판타지의 요소를 일종의 사실주의와 결합시켜 깊이 있고 현실감 넘치는 문학으로 재탄생시켰다"며 "이후 모든 판타지 작가에게 톨킨은 교사인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었다"고 말했다. 로즈버리 교수는 문학, 게임, 영화 등 대중문화 전 분야에 불었던 '톨킨 열풍'을 분석한 책 '톨킨, 문화현상(Tolkien, A Cultural Phenomenon)'의 저자다.

로즈버리 교수는 "톨킨을 톨킨이 될 수 있게 한 요인은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은 경험, 천부적 언어 재능, 북유럽 언어·신화 전통에 대한 관심, 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숙성시킬 수 있었던 환경 등을 모두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서 고초를 겪은 다른 많은 작가처럼 톨킨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객사(客死)하며 잉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건조하고 삭막한 남아공과 달리 나무와 물이 가득한 영국 미들랜드의 자연과 금세 사랑에 빠졌지요. 영국인이지만 늘 아버지와 고향을 잃은 이방인이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어린 톨킨에게 다양한 언어를 깊이 있게 가르쳤다. 버밍엄 최고 명문인 킹에드워즈 스쿨과 옥스퍼드대의 교육을 받으며 타고난 언어학적 재능은 꽃을 피웠다. 노르만 침략으로 파괴된 옛 앵글로 색슨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중간계의 북유럽 언어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로즈버리는 "그중에서도 언어적 재능이 핵심"이라고 했다. "톨킨은 '이름을 정해주면 이야기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엘프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말하고 불리는 존재는 아름다운 역사를, 오크처럼 공포스러운 언어로 말하고 불리는 존재는 무서운 역사를 줬어요. '음성학적 서사 스타일'을 창조한 겁니다."

톨킨은 훗날 그가 '모르도르(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소굴)'에 비유했던 1차대전 참전 이후, 옥스퍼드대 종신교수가 돼 학문에 전념하다 '호빗'을 내기까지 20여년간 별다른 책을 쓰지 않았다. 로즈버리 교수는 "톨킨의 삶은 초반 25년이 파란만장했던 데 비해 나중 55년은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선선한 저장고에서 와인이 익어가듯, 인생의 평온함 속에 재능과 경험이 숙성돼 '중간계'라는 창조물로 태어난 것"이라고 했다.

[프레스턴(영국)=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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