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 강좌서 살핀
- '직지의 인류 문화사적 의미'
- 현존 最古 금속활자인쇄본 '직지'
- "1377년 청주서 흥덕사서 인쇄
- 고려금속활자 발명은 미디어혁명
- 외적침입·천도 위기서 인쇄술 탄생"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으로 독일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섰다고 배웠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가 왜 중요한지 제대로 모른다. 아무 감동도 없이 그저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로 기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直指)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이 마련한 고문헌강좌인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와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인류문화사적 의미’가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남윤성 전 청주 MBC 편성국장은 1995년부터 10여년간 금속활자인쇄술과 관련한 7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고려 금속활자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원제는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직지는 약칭이다. 불교의 큰 스승들이 선(禪)의 요체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 핵심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직지의 마지막 장에는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목 외곽에 있는 흥덕사라는 절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해 펴냈다”는 간기(刊記)가 있다. 흥덕사에서 직지를 간행하며 인쇄 연대와 장소, 방법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직지는 원래 상하 2권이지만 현재 전해오는 금속활자본 직지는 첫 장이 떨어져 나간 하권 1권뿐이다. 이조차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 특별서고 깊은 곳에 소장돼 있다. 직지를 프랑스에 가져간 이는 19세기 말 조선에 부임했던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그는 1890년대 말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가 1911년 경매에 넘겨 팔았고, 직지를 샀던 앙리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이후 재불 서지학자였던 박병선 박사의 노력 끝에 1972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직지는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물 가운데 세계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인류의 인쇄역사와 기술변화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물”이라고 등재이유를 밝혔다.
한편 청주시는 9월 4일을 ‘직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2004년 4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상을 제정, 매년 격년제로 시상한다.
◇고려 당대 세계 최고의 지식정보 강국
우리나라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일반인의 인식은 다소 자조적이다.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세계사에 기여한 것도 없는데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것. 남 전 국장은 이날 특강에서 세간의 이러한 인식에 대해 반박했다. 다시 말해 고려가 당대 세계 최고의 지식정보강국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미디어 혁명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는 1200년대 초 고려 수도 개성에서 시작한 게 분명하다는 게 우리 학계의 정설이다. 최초의 기록은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나온다. 1234년에서 1241년 사이 상정예문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해서 조정 각 부처에 배포했다는 것이다.
남 전 국장은 “상정예문을 인쇄한 시기는 몽골의 2차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해 있던 해”라며 “외적 침입과 천도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한가로이 금속활자 인쇄본이 탄생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그 시기는 고려 조정이 금속활자를 상용화한 단계라고 보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 이전에 개성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시작한 것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상용화를 시작했다는 것. 특히 당시로선 최첨단 미디어인 금속활자 인쇄술을 지방인 청주의 사찰에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금속활자 사용이 고려 때 전국적 현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직지 세계화’ 중앙정부에서 추진해야
당장 ‘직지 세계화’를 서둘러야 한다. 청주시에서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직지 세계화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아쉬운 대목이 많다. 중앙정부에서 나서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전 국장은 “직지를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세운 청주고인쇄박물관을 현재 청주시 사업소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전환해 위상을 높여야 한다”며 “직지의 세계사적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초·중·고 교과서에 대한 전면 개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학자들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도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중국의 비단이 서양으로 넘어간 실크로드가 존재하듯이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으로 넘어간 경로를 밝히는 이른바 활자로드의 존재 여부에 대한 규명도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김성곤 (skzero@edaily.co.kr)
- '직지의 인류 문화사적 의미'
- 현존 最古 금속활자인쇄본 '직지'
- "1377년 청주서 흥덕사서 인쇄
- 고려금속활자 발명은 미디어혁명
- 외적침입·천도 위기서 인쇄술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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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으로 독일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섰다고 배웠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가 왜 중요한지 제대로 모른다. 아무 감동도 없이 그저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로 기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直指)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이 마련한 고문헌강좌인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와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인류문화사적 의미’가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남윤성 전 청주 MBC 편성국장은 1995년부터 10여년간 금속활자인쇄술과 관련한 7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고려 금속활자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원제는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직지는 약칭이다. 불교의 큰 스승들이 선(禪)의 요체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 핵심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직지의 마지막 장에는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목 외곽에 있는 흥덕사라는 절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해 펴냈다”는 간기(刊記)가 있다. 흥덕사에서 직지를 간행하며 인쇄 연대와 장소, 방법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직지는 원래 상하 2권이지만 현재 전해오는 금속활자본 직지는 첫 장이 떨어져 나간 하권 1권뿐이다. 이조차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 특별서고 깊은 곳에 소장돼 있다. 직지를 프랑스에 가져간 이는 19세기 말 조선에 부임했던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그는 1890년대 말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가 1911년 경매에 넘겨 팔았고, 직지를 샀던 앙리 베베르의 유언에 따라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이후 재불 서지학자였던 박병선 박사의 노력 끝에 1972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직지는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물 가운데 세계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인류의 인쇄역사와 기술변화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물”이라고 등재이유를 밝혔다.
한편 청주시는 9월 4일을 ‘직지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2004년 4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상을 제정, 매년 격년제로 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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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일반인의 인식은 다소 자조적이다.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세계사에 기여한 것도 없는데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것. 남 전 국장은 이날 특강에서 세간의 이러한 인식에 대해 반박했다. 다시 말해 고려가 당대 세계 최고의 지식정보강국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이라는 미디어 혁명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는 1200년대 초 고려 수도 개성에서 시작한 게 분명하다는 게 우리 학계의 정설이다. 최초의 기록은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나온다. 1234년에서 1241년 사이 상정예문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해서 조정 각 부처에 배포했다는 것이다.
남 전 국장은 “상정예문을 인쇄한 시기는 몽골의 2차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해 있던 해”라며 “외적 침입과 천도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한가로이 금속활자 인쇄본이 탄생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그 시기는 고려 조정이 금속활자를 상용화한 단계라고 보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 이전에 개성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시작한 것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상용화를 시작했다는 것. 특히 당시로선 최첨단 미디어인 금속활자 인쇄술을 지방인 청주의 사찰에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금속활자 사용이 고려 때 전국적 현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직지 세계화’ 중앙정부에서 추진해야
당장 ‘직지 세계화’를 서둘러야 한다. 청주시에서 매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직지 세계화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아쉬운 대목이 많다. 중앙정부에서 나서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전 국장은 “직지를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세운 청주고인쇄박물관을 현재 청주시 사업소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전환해 위상을 높여야 한다”며 “직지의 세계사적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초·중·고 교과서에 대한 전면 개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학자들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를 부정하고 있는 것에도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중국의 비단이 서양으로 넘어간 실크로드가 존재하듯이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으로 넘어간 경로를 밝히는 이른바 활자로드의 존재 여부에 대한 규명도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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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skzero@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