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국자수박물관에서 만난 허 관장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고 힘찬 목소리로 우리 보자기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냈다.
“실을 잣는 도구가 발견되는 청동기시대부터 보자기를 만들어 썼던 것으로 추정돼요. 우리 전통 옷엔 주머니가 없어 별도의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찼고, 부피가 큰 옷감 등은 보자기에 싸서 운반했기 때문이죠.”
그가 강조하는 우리 보자기의 특징은 긴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보자기가 있다는 것. 만드는 방식에 따라 자수를 놓은 수보, 물감으로 십장생 등을 묘사한 그림보, 남는 천을 이은 조각보 등으로 구분된다.
“수보는 관동지방에서 많이 만들었어요. 해가 일찍 떨어지는 산간지방에선 아낙네들이 보자기에 수놓으며 소일을 했겠죠. 나무와 새 등의 문양이 정교하고 아름다운데 유교사회에서 펼치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예술성이 보자기를 통해 분출된 것이죠.”
상을 덮는 상보, 예단을 싸는 혼수보, 옷보와 이불보 등 보자기가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양하다. 혼수보에는 술(장식실)을 달고 금전지(금박종이)를 덧대 화려함을 더했다.
재료에 따라서는 비단보·모시보·면보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비단보는 호남지방에서 주로 발견된다. 드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물자가 풍부해서다.
보자기의 귀퉁이에 끈이 달린 것도 우리 보자기의 특징. 취향이나 묶는 방법에 따라 끈의 수는 1~4개까지 다양하다.
여러 보자기 중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조각보다. 일본과 터키 등 다른 나라에도 보자기는 있지만 조각보는 한국에만 있다.
“옷감은 직사각형이고 한복은 곡선의 미를 추구하니 자연히 자투리 옷감이 남았겠죠. 옛 사람들이 이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조각보를 만들었어요.”
이러한 우리 보자기의 예술적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색색의 천이 절묘하게 이어지고 기하학 문양의 수가 놓인 보자기가 서양 사람 눈에는 추상미술 작품으로 비친 것.
허 관장은 “국내에도 보자기에 주목하는 예술가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관심이 부족하다”며 “우리 보자기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은…국가보물 자수 등 3천여 유물 소장
허동화 관장이 1976년 개관한 한국자수박물관은 1960년대부터 수집된 자수와 보자기를 중심으로 다듬잇돌·발·화문석 등 총 3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자수사계분경도·수가사 등의 자수 작품은 국가 지정 보물로, 왕비보·다라니주머니·대향낭 등은 중요민속자료로 채택됐다.
최근 <베갯모>(2009) <주머니 쌈지>(2010) <이렇게 귀여운 어린이 옷>(2013) 등의 전시회를 통해 규방 공예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하고,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열리고 있는 <규방 예술의 극치, 보자기>전에서는 2012~2013년 해외에 출품돼 큰 호응을 얻었던 조선시대 보자기 80여점이 전시 중이다. 궁중용보자기·당채장생문보·방사문혼례용수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허 관장은 “지난 39년간 700만명이 우리 보자기 문화를 보았다”며 “1000만명을 목표로 국내외에 새로운 전시회를 꾸준히 선보이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관람료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