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본집은 버선본을 보관하는 주머니이다. 1호크기 정도인 네모난 작은 천연염색직물의 잘 보이는 위치에 예쁘게 수를 놓은 후 네 귀퉁이를 중심 쪽으로 접은 다음 고정시켜 주머니를 만든다. 표현된 자수문양들은 화조도, 화접도, 각종 동식물문양이나 길상문자 등 매우 다양하다. 문양의 형태는 화폭의 제약으로 생략과 절제의 미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마치 한폭의 비구상미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각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도지방에는 아주 작은 색동조각천을 정교한 바느질로 촘촘히 연결하여 조각보형태의 버선본집을 만들었다. 추상문양의 자수로 유명한 강릉지방에는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 색실누비형태의 버선본집도 발견되고 있다. 전통적인 버선본집의 제작양식이 전국적으로 매우 다양함을 알 수가 있다.
조선왕실에서 전문적으로 제작되는 버선본집의 자수문양은 매우 정교하며 화려한 금사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왕실의 위험과 권위를 잘 보여 준다. 이에 반해 일반민가의 버선본집은 궁중버선본집에 비해 화려하고 세련된 맛은 부족하지만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자유로운 해방감과 정겨움을 느끼며, 디자인적인 요소도 매우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민가에서 제작되는 버선본집은 태두리를 징금수로 꼼꼼하게 처리하여 소유자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기도 하고, 푼사와 꼰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문양의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다. 시아버님, 시어머님, 남편, 아들, 딸들의 명칭을 한지버선본 위에 한글로 표기하여 사용하기 쉽게 구분하였다. 형편에 따라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버선본을 비교적 큰 사이즈의 버선본집에 함께 넣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만들어 보관하였다.
우리 어머니들은 작은 버선본집속에 사랑하는 가족구성원의 발사이즈에 맞게 한지로 정성을 들여 만든 버선본을 버선본집속에 고이 접어 간직하였다. 그리고 가족의 수복강령과 행복을 간절히 염원하였다. 버선본집에 표현된 자수문양들을 보노라면 장욱진화백이 즐겨 말한 압축미의 전형을 보는 것과 같다. 장욱진화백은 화폭의 크기가 1호가 넘어 가면 그림이 싱거워 진다고 하였다. 그만큼 회화적인 작품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이미 압축미의 대가들이며, 미술원리를 몸소 체득한 위대한 화가들인 것이다. 가족의 버선본을 담은 예쁘고 화려한 자수문양의 버선본집을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는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가 있다. 행복한 가족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꿈이 작은 버선본집속에서 꿈길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문양, 행복한 스토리로 가득한 버선본집은 한국적인 스토리 디자인의 보고이자 미래미술의 원천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버선본집유물들은 동양자수박물관이 자랑하는 자수콜렉션 테마중의 하나로서 조선후기에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되는 버선본집도록으로서 자수전문가나 문양디자이너, 기타 다양한 시각미술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에게 전통자수연구와 더불어 예술창작의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를 것이다. (버선본집 이야기전 도록발간사, 2020. 10)